[국밥기행] #1 어머니의 김치뭇국을 생각하며 쉰의 나이에 혼자 떠나는 여행

BMW X5 타고 우리땅의 국밥을 찾아 떠나는 출사표
작가, 사업가로 살아온 양승덕의 따뜻한 이야기
이다일 기자 2024-02-14 19:48:09
글・사진=양승덕
에디터=이다일

국밥 기행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쉰의 나이를 바라보는 사십 대 후반 즈음이었다. 가장으로서, 배나온 부장급 직장인으로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고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었던 나이였다.

X5를 타고 길 위를 지날 때는 모든 풍경이 고마웠다 / 사진=양승덕

2017년 연말 가까스로 아내의 허락을 받고 2박3일간 떠났던 국밥 여행이 시작이었다. 처음엔 남자 혼자 떠나는 여행이 좋았다. 고속버스 유리창 바깥으로 눈 덮인 산야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무작정 남쪽으로 갔고, 통영과 거제를 거쳐 순천, 목포, 함평으로 돌았다. 그 다음 해는 하동, 나주, 예산을 다녀왔다.

또 한 번은 담양, 신안, 남원을 여행했다. 그 여행 동안 허름하고 이름 모를 식당의 국밥을 즐겼다. 국밥의 종류도 다양했다. 소고기, 돼지고기, 순대, 재첩, 다슬기, 짱뚱어, 민물고기, 곱창, 우럭, 민어, 시래기, 콩나물 등등. 동네마다 다른 재료와 특성이 국밥에 녹아 있었다. 스산한 겨울 풍경을 느끼며, 짜여진 동선 없이 휘적휘적 다니면서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좋았다. 그 시작 이래로 6년이 지난 셈이다.

국밥 한 그릇은 허기진 영혼에게 보내는 위로 같은 것 / 사진=양승덕

겨울 국밥은 매일의 삶에 지친 허기진 영혼에게 보내는 위로 같은 것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만족의 빈자리에 따듯한 국물이 들어가면 이렇게 또 일 년을 보내는구나 싶었다. 금방 만들어 내지만 결코 가볍게 대하면 안될 것 같은 국밥. 음식이 금방 나온다는 것은 오랜 시간 재료를 우려냈기에 가능한 반전이기 때문이다. 김치를 얹어 후후 불고 후루룩 삼키면 어머니와 고향이 스쳐 지나가는 음식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겨울이면 단골로 김치와 무를 썰어 넣은 김치뭇국을 만들어 가족을 먹였다. 집에서 떨어진 밭에 깊게 묻어 둔 무를 꺼내 오는 일은 내 몫이었다. 김치뭇국을 차리던 어머니는 미안해했다.

반찬이 늘 똑같다며. 가끔 고등어 자반이라도 상에 올라오는 날은 어머니의 표정이 밝았다. 일하는 사람들이 뚝딱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으로 국밥 만한 게 있을까?

시골 길에 차를 세우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바람소리, 새소리가 정겹다 / 사진=양승덕

그 흔적들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 또한 잘못된 욕심이겠지’ 하면서. 지나온 자리를 돌아보며 뭔가를 쓰고 싶은 욕구와 여행이 주는 묘미가 어우러져 욕심이 스멀 올라온 것. 국밥 기행을 떠올린 건 스무 살의 꿈도 한 몫 했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국문학과에 진학했던 내 스무 살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이제는 다시 돌아와 배 나온 중년의 아저씨가 국밥에 대하여 글로 경의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할까!

광주의 시인 김준태는 시 ‘국밥과 희망’에서 ‘국밥을 먹으며’, ‘인간은 결코 절망할 수 없음’을 ‘신뢰한다’고 말한다.

“오오, 국밥이여, 국밥에 섞여 있는 뜨거운 희망이여, 국밥 속에 뒤엉켜 춤을 추는, 인간의 옛 추억과 희망이여”라고 시작해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이끌어 올리는 국밥이여 희망이여”라고 맺으며 국밥은 희망이라고 했다.

새해를 시작하며 희망을 다시 생각해 본다. 시인의 말처럼 옛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새로운 시작, 희망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국밥만큼 옛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가 또 있을까? 어느 읍내 골목길에서 만날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떠올리면 벌써 가슴이 뛴다. 또 식당에서 만날 국밥 먹으러 온 사람들의 인생이 궁금해진다. 국밥은 민중적이고, 생활적이기 때문이다.

첫 국밥 여행지였던 통영에서 사량도로 들어가는 배 위에서 상념에 젖다 / 사진=양승덕

유명한 맛집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순대국과 돼지국밥 같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음식도 취향은 아니다. 찌개, 국, 전골, 탕을 아우르되 제대로 구별해 볼 작정이다. 운이 좋으면 식당이 아닌 집밥도 먹어보면 좋겠다. 자신 없는 맛 표현 보다는 사연과 인연을 따라 이야기를 곁들여도 좋겠다. 흔들림 없는 SUV 최강자 BMW X5가 길을 지켜줄 것이기에 더 마음 든든하다. 출사표가 거창하다.

겨울 국밥기행은 눈 덮인 산야를 바라 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 사진=양승덕

장영희 교수가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누군가…굳건하게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면 그처럼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라며 글 쓴 이유를 말했다. 어림없는 이야기이겠지만, 행여나 국밥 기행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영혼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양승덕 작가 / 홍보회사 웰컴 대표
    경향신문과 세계일보에서 여행, 자동차, 문화를 취재했다. 한민족의 뿌리를 찾는 '코리안루트를 찾아서'(경향신문),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소개한 '아름다운 한국'(경향신문+네이버) 등을 연재했고 수입차 업계의 명암을 밝힌 기사로 세계일보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2017년에는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캐스트를 창간하고 영상을 위주로 한 뉴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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